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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와 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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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s 자유시장

[Translated by Sooyoun Hwang. (황수연 역)]

만약 사람이 개미와 같다면, 인간의 자유에 대한 관심은 없을 것이다. 만약 개개 사람들이, 개미들과 같이, 모양이 같고, 상호 교환 가능하며, 자기 자신의 특수한 개성이 없다면, 그들이 자유롭거나 아니거나 누가 상관할까? 참으로, 그들이 살건 죽건 누가 상관할까? 인류의 영광은 각 개인의 독특성, 즉 모든 사람이, 많은 면들에서 다른 사람들과 비슷하지만, 자기 자신의 완전히 개인화된 성격을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어느 사람이나 모두를 대체 불가능하게 하고, 그가 죽는지 사는지, 그가 행복한지 괴로운지 우리더러 걱정하게 하는 것은 각자가 독특하다는 사실―어느 두 사람도 완전히 상호 교환 가능할 리 없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유 사회를 옹호하는 주요 논거들 중 하나를 구성하는 것은 이 독특한 개성들이 그것들의 완전한 개발을 위해서는 자유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이다.

아마도 지적인 생물이, 그 개별적인 생물 자체가 내적인 학습이나 선택을 할 필요가 없이, 어떤 종류의 외부적으로 결정되는 우리에서 완전히 형성되는 어느 세계가 어딘가에 존재할지 모른다. 그러나 사람은 불가피하게 다른 상황에 있다. 개개 인간들은 완전히 형성된 지식, 가치, 목적, 혹은 개성을 가지고 태어나거나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들은 각각 자기 자신의 가치와 목적을 형성해야 하고, 자기의 개성을 개발해야 하며, 자신과 자기 주위의 세계에 관해 배워야 한다. 자기 자신의 개성의 어떤 종류의 개발이든 일어나기 위해서는, 모든 사람은 자유를 가져야 하고, 자기 자신의 선택을 형성하고 검증하고 그것에 따라 행동할 여지를 가져야 한다. 요컨대, 그는 자기가 완전히 인간답기 위해서 자유로워야 한다. 어떤 의미에서, 심지어 가장 냉혹하고 전체주의적인 문명들과 사회들조차도 개인의 선택과 개발을 위해 적어도 티끌만큼의 여지를 허용했다. 심지어 가장 획일적이고 자유가 없는 전제 국가들 조차도, 그저 사회의 규칙들의 틈새들 안에서 뿐이라 하더라도, 선택의 자유를 위한 적어도 소량의 “공간(space)”을 허용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물론, 사회가 더 자유로울수록, 개인의 행동들에 대한 간섭이 더 적었고, 각 개인의 개발을 위한 여지가 더 컸다. 그렇다면, 사회가 더 자유로울수록, 사람들 사이의 다양성과 차이가 더 클 것인데, 왜냐하면 모든 사람의 독특한 개성이 더욱 충분하게 개발될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사회가 더욱 전제적일수록, 개인의 자유에 대한 제한들이 더 많고, 사람들 사이에 더 많은 획일성과 더 적은 다양성이 존재할 것이며, 어느 사람이나 모두의 독특한 개성이 덜 개발될 것이다. 그렇다면, 심오한 의미에서, 전제적인 사회는 자기 구성원들이 완전히 인간답지 못하게 한다.​1

설사 자유가 개인의 완전한 개발을 위한 필요조건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결코 유일한 요건이 아니다. 사회 자체가 충분히 개발되어야 한다. 예를 들면, 어느 누구도 무인도나 원시 사회에서 독창적인 물리학자가 될 수 없다. 왜냐하면 경제가 성장함에 따라, 생산자와 소비자에게 열려 있는 선택의 범위가 크게 늘기 시작하기 때문이다.​2 더군다나, 생존 수준보다 상당히 더 높은 생활수준을 가지고 있는 사회만이 자기 자원들의 많은 부분을 지식을 향상시키는 데와 무수한 재화들과 서비스들을 맹목적인 생존의 수준 위로 개발하는 데 바칠 여유가 있다. 그러나 원시적이거나 미개발된 사회에서 각 개인의 창조력의 완전한 개발이 일어날 수 없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는데, 그것은 광범위한 분업(division of labor)의 필요이다.

어느 누구도 전문화(specialization)에 종사하지 않고는 자기 능력을 어떤 방향으로든 완전히 개발할 수 없다. 자활하기 위해 끝없이 연속되는 상이한 일들에 얽매어 있는 원시 부족민이나 농부는 어떤 특정 관심이든 철저하게 추구하는 데 이용할 수 있는 시간이나 자원들을 가질 수 없었다. 그는 전문화할 여지가 없었고, 자기가 가장 잘하거나 자기가 가장 관심 있는 어떤 분야건 개발할 여지가 없었다. 200년 전에, 애덤 스미스는 진전하고 있는 분업이 어떤 경제든 가장 원시적인 수준 이상으로 향상하는 데 열쇠라고 지적했다. 어떤 종류든 개발된 경제의 필요조건인 분업은 또한 어떤 종류든 문명화된 사회의 개발에도 필수적이다. 철학자, 과학자, 건축업자, 상인, 그 어느 누구도 만약 그가 전문화의 여지를 가지고 있지 않았더라면 이러한 기술들이나 기능들을 개발할 수 없었을 것이다. 더군다나, 광범위한 분업을 누리는 사회에 살고 있지 않은 어떤 개인도 도저히 자기 능력을 최대한으로 철저하게 사용할 수 없다. 그는 자기 능력을 한 분야나 지식 분야에 집중할 수 없고 그 지식 분야와 자기 자신의 지력을 향상시킬 수 없다. 자기가 가장 잘하는 어떤 것에건 전문화할 기회가 없이는, 어떤 사람도 자기 능력을 철저히 개발할 수 없다. 그러면 어떤 사람도 완전히 인간답게 될 수 없을 것이다.

개발된 경제와 사회를 위해 지속적이고 진전하는 분업이 필요하지만, 어떤 주어진 시한에서든 그러한 개발의 정도는 어떤 주어진 경제든 가질 수 있는 전문화의 정도를 제한한다. 그러므로 원시적인 섬에서는 물리학자나 컴퓨터 기술자의 여지가 없다. 이러한 기술들은 그 기존 경제의 맥락 안에서는 시기상조일 것이다. 애덤 스미스가 말했듯이, “분업은 시장의 정도에 의해 제한된다.” 그러므로 경제 및 사회 개발은 서로 보강하는 과정이다. 시장의 개발은 더 넓은 분업을 허용하고, 이것은 그 다음에는 시장의 더 이상의 확대를 가능하게 한다.​3

만약 시장의 범위와 분업의 정도가 서로 보강하고 있다면, 분업과 사람들 사이의 개인 관심들과 능력들의 다양성도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각 개인의 능력과 재능에 완전한 여지를 주는 데 언제나 더 큰 분업이 필요한 것과 꼭 마찬가지로, 바로 그 분업의 존재는 사람들 사이의 내재적인 다양성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만약 모든 사람이 획일적이고 상호 교환 가능하다면 분업의 여지가 전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분업의 발생의 더 이상의 조건은 자연 자원들의 다양성이다. 즉, 지구상의 특정 토지들도 역시 상호 교환 가능하지 않다.) 더군다나, 분업에 기초를 둔 시장 경제가 대단히 협동적(cooperative)이라는 점과 그러한 분업이 그 생산성과 따라서 그 사업에 참가하고 있는 모든 사람의 부를 막대하게 늘렸다는 점은 인간의 역사에서 이내 명백하게 되었다. 경제학자 루트비히 폰 미제스는 그 문제를 매우 명백하게 진술했다.

“역사적으로 분업은 자연의 두 가지 사실, 즉 인간 능력들의 불평등성과 지구상 인간 생활의 외부 조건들의 다양성에서 비롯된다. 이 두 사실은 실제로 하나, 자연의 다양성(diversity of Nature)인데, 자연은 되풀이되는 것이 아니라 우주를 무한하고 소진 불가능하도록 다양하게 창조한다...

이 두 조건은 ... 참으로 분업을 인간에게 거의 강제하는 것과 같다. 늙은이와 젊은이, 남자들과 여자들은 자기들의 다양한 능력들을 적절하게 사용하여 협동한다. 여기에 또한 지리적 분업의 근원도 있다. 즉, 남자는 사냥터에 가고 여자는 물 길으러 샘에 간다. 모든 개인들의 힘과 능력들 그리고 외부적인 생산 조건들이 모든 곳에서 같았더라면 분업이라는 생각은 결코 생길 수 없었을 것이다. ... 사회적 생활은 지리적으로 획일적인 세계에 사는 동등한 자연적 능력의 사람들 사이에서는 일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일단 노동이 나누어지게 되면, 분업 자체는 차별적인 영향력(differentiating influence)을 행사한다. 노동이 나누어진다는 사실은 개인 재능의 그 이상의 계발을 가능하게 하고 따라서 협동은 더욱더 생산적이게 된다. 협동을 통해 사람들은 개인들로서 자기들 능력 밖이었을 것을 달성할 수 있다...

분업 하에서의 더 큰 작업 생산성은 통합적인 영향력(unifying influence)이다. 그것으로 인해 사람들은 서로를 존재를 위한 투쟁에서 경쟁자로서보다 복지를 위한 공동 투쟁에서 동지로서 간주하게 된다.​”4

그렇다면, 개인의 개발을 위해 자유가 필요하고, 그러한 개발은 또한 분업의 정도와 생활수준의 높이에도 달려 있다. 개발된 경제는 개인의 능력들에 관해 원시적인 경제가 할 수 있는 것보다 엄청나게 더 큰 전문화와 개화(開花)를 위한 여지를 만들고 장려하는데, 그러한 개발의 정도가 더 클수록 각 개인을 위한 여지가 더 커진다.

만약 자유와 시장의 성장 각각이 각 개인의 개발에, 그러므로 다양성과 개인의 차이들의 개화에, 중요하다면, 자유와 경제 성장 사이에 뜻밖의 관련도 있다. 왜냐하면 경제 성장을 위한, 따라서 시장 경제와 개발된 분업의, 장(場)을 마련하는 것은 바로 자유, 즉 개인 간 제한이나 간섭이 없거나 제한되어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산업 혁명과 그 계(系)이자 결과인 서양의 경제 성장은 기업심을 위한, 발명과 혁신을 위한, 노동의 이동성과 향상을 위한 그것의 상대적 자유의 산물이었다. 다른 시대와 장소의 사회들과 비교했을 때, 18세기와 19세기 서유럽과 미국은 정부에 의한 많은 괴롭힘과 간섭에서 안전한 훨씬 더 큰 사회적 및 경제적 자유―이동하고, 투자하고, 일하고, 생산할 자유―로 특징지어졌다. 다른 곳에서의 정부의 역할과 비교되었을 때, 이 세기들의 서양에서 정부의 역할은 놀랍도록 아주 작았다.​5

투자, 이동성, 분업, 창조성, 그리고 기업가 정신을 위한 완전한 여지를 허용함으로써, 자유 경제는 그것에 의해서 빠른 경제 개발의 조건들을 창출한다. 애덤 스미스가 잘 지적했듯이, “국부(wealth of nations)”를 개발하는 것은 자유와 자유 시장이다. 따라서 자유는 경제 개발에 이르고, 이 조건들 둘 다 그 다음에는 개인의 개발과 개인의 능력의 전개를 늘린다. 그렇다면 두 가지 결정적인 면에서 자유는 근원이다. 오직 자유인만이 충분히 개인화될 수 있고, 그러므로, 완전히 인간답게 될 수 있다.

만약 자유가 분업의 확대와 완전한 범위의 개인의 개발에 이른다면, 그것은 또한 인구 증가에도 이른다. 왜냐하면 분업이 시장의 정도에 의해 제한되는 것과 꼭 마찬가지로, 총 인구도 총 생산에 의해 제한되기 때문이다. 산업 혁명에 관해 두드러진 사실들 중 하나는 모든 사람에 대한 생활수준의 큰 상승뿐만 아니라 그러한 풍부한 생활수준들이 엄청나게 더 큰 인구에 대해 실행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북아메리카의 토지 지역은 500년 전에는 단지 대략 100만 명의 인디언들만 부양할 수 있었고, 그것도 가까스로 생존 수준에서 그렇게 할 수 있었다. 설사 우리가 분업을 제거하기를 원한다 할지라도, 우리는 현재의 세계 인구의 태반을 문자 그대로 일소하지 않고는 그렇게 할 수 없을 것이다.

≪자유, 불평등, 원시주의, 그리고 분업(Freedom, Inequality, Primitivism, and the Division of Labor)≫에서 발췌


저자) Murray N. Rothbard

머리 N. 로스버드는 경제학, 역사, 정치 철학, 그리고 법률 이론에 주요 공헌을 했다. 그는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을 개인의 자유에 대한 열렬한 헌신과 결합했다.


Dr. Sooyoun Hwang is a former professor of public choice at Kyungsung University, Busan, Korea.

Link to the article on Mises Wire Korea can be found here.

  • 1. 자유, 다양성, 그리고 각 개인의 개발 사이의 상호 관계에 관해서는, 빌헬름 폰 훔볼트(Wilhelm von Humboldt)의 고전적인 작품, ≪국가 행동의 한계(The Limits of State Action)≫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69)를 보라. 개성의 개발에 필요한 것으로서의 자유에 관해서는, 또한 조사이아 워렌(Josiah Warren), ≪공평한 상업(Equitable Commerce)≫ (New York: Burt Franklin, 1965)과 스티븐 펄 앤드루스(Stephen Pearl Andrews), ≪사회의 과학(The Science of Society)≫ (London: C. W. Daniel, 1913)도 보라.
  • 2. 경제학자들 바우어와 야미는 경제 개발(economic development)을 “소비자로서와 생산자로서의 사람들에게 열려 있는 대안들의 범위의 확대”라고 설득력 있게 정의한다. 피터 T. 바우어(Peter T. Bauer)와 배질 S. 야미(Basil S. Yamey), ≪저개발 국가의 경제학(The Economics of Underdeveloped Countries)≫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57), p. 151.
  • 3. 조지 J. 스티글러(George J. Stigler), “분업은 시장의 정도에 의해 제한된다(The Division of Labor is Limited by the Extent of the Market),” ≪정치경제학 저널(Journal of Political Economy)≫ (June, 1951), p. 193을 보라.
  • 4. 루트비히 폰 미제스(Ludwig von Mises), ≪사회주의: 경제학적이고 사회학적인 분석(Socialism: An Economic and Sociological Analysis)≫ (New Haven: Yale University Press, 1951), pp. 292-95, p. 303.
  • 5. 역사가들은 영국에서도 미국에서도 정부가 엄밀하게 자유방임의 이상에 국한하지 않았다고 최근 수십 년간 우리들을 환기시켜 오고 있다. 아주 옳다. 그러나 우리는 차이의 의미를 알기 위하여 이 시대를 더 앞의―그리고 더 뒤의―시대의 정부의 역할과 비교해 보아야 한다. 따라서 카를 위트포겔(Karl Wittfogel), ≪동양의 전제 정치(Oriental Despotism)≫ (New York: Yale University Press, 1957)와 비교하라.

Murray N. Rothbard made major contributions to economics, history, political philosophy, and legal theory. He combined Austrian economics with a fervent commitment to individual liber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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